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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20

앨프리즈 W. 크로스비, <수량화 혁명>: 측정가능하다는 믿음의 기원 근대에 이르러 서구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원인은 자연과학과 기술, 그리고 무기다. 그러한 배경에는 종교나, 철학 등 서구 근대문화가 달성한 업적들도 있었겠지만,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중앙집권제 국가들보다 월등한 생산력과 파괴력, 그리고 지배력을 갖출 수 있었던 까닭은 ‘정량적 사고’다. 앨프리드 W. 크로스비의 은 서구문명에서 ‘양적’ 실재가 ‘질적’ 실재를 대체하고, 나아가 양적인 변형을 일으키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켜온 역사를 다룬다. 책은 결론 격인 3부를 제외하고, 수량화와 시각화 두 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측량과 표준화 등을 통해 수량적 사고가 자리잡아 근대 ‘수량화 혁명’의 기초가 쌓이는 필요조건들을 다루는 한편 2부에서는 그러한 사고들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라는 방법을 통해 ‘과학’.. Readings 2021. 10. 4.
김유원, <불펜의 시간>: 평범한 모욕의 시대에 건내는 작지만 단단한 위로 휴가 가기 전 날 ‘홧김에’ 주문한 을 다 읽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책 뒤편에 써진 이 투박한 문구에 마음이 이끌렸다. 휴가에 돌아와서는 단숨에 읽었다. 평소에 소설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읽는 데 힘이 들지 않았다. 은 ‘생존주의’ 사회에 사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준삼, 혁오, 기현. 준삼은 야구선수를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로 한 직장인, 혁오는 어릴 적 트라우마로 볼넷을 던지는 투수, 기현은 여자이기에 프로 야구선수가 되지 못한 스포츠신문 기자다. 준삼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혁오는 ‘진호리그’와 정규리그를 함께 뛰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기현은 스포츠신문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각자가 겪는 삶은 모욕적이다. 준삼은 ‘평범한 삶’을.. Readings 2021. 10. 3.
김문겸∙이일래∙인태정, <여가의 시대>: 여가가 주는 해방감 ‘쉴 때 뭐해요?’ 작년 요맘때 직장 선배들이 이 질문을 할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내 취미는 책 읽기인데 공대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던 나는 별종이었기에, 뭔가 다른 답을 해야만 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24시간 중 대부분을 일 하기 위해 쓰거나,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 하는데 쓰는데 그게 왜 중요하다고 느껴야 하나 싶었다. 회사에 출근한지 만 1년이 가까스로 지난 지금에야, 왜 쉴 때 뭐하는지가 정말 소중하다고 느낀다. 회사 일로 어떤 계획도 미리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침엔 달리고, 틈틈이 책 읽고, 제2외국어 공부하고, 근무시간만 딱 채우고 헬스장으로 뛰어갈 때 묘하게 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 Readings 2021. 9. 24.
천정환 ∙ 정종현, <대한민국 독서사>: 책 읽기에 대한 생각들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다. 대학 이전의 이사에서 나는 뭐든지 다 버려도 좋다고 말씀 드렸는데, 대학 입학 이후로는 늘 “책 좀 팔아라”는 잔소리를 듣고도 절대 못 판다며 빡빡 우기다 결국 내 지갑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을 낸다. 사실 아직 부모님께 붙어 사는 까닭도, 내 힘으로 구할 수 있는 집에는 이 책들을 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로 차마 팔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책들 사이사이 꽂힌 기억들로 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남아있는 기억은, 내 대학시절 모든 기억들이 담긴 학교 앞 책방에서 만든 기억들이다. 역 앞의 빵집 앞 지하에 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완 달리 치열한 분위기의 인문사회과학 서적들로 빼곡히 차 있던 책장들 늘 웃으며 맞아주시던 지기님, 그리고 다른 대학시절 소중한 .. Readings 2021. 9. 13.
한석정, <만주모던>: 오래 지속되는 만주국 박근혜 대통령 당시 흔히 ‘유신체제’라는 키워드로 한국정치 체제나 한국사회의 경직성을 분석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탄핵집회 이후 이 시대가 종결됐다는 자축과 함께 유신체제라는 말이 쏙 들어간 것 같다. 개발과 발전이 아니고도 더 좋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는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대체했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시간만 흐른다. 구체제가 몰락한 이후 단기간에 안정화된 신체제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만, 그 체제가 보여줄 수 있는 미래는 유신체제보다 더 빛날 수 있을까? 출간된 지 5년이 다 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이 책이 신간이었던 2016년에는 뭐가 오든 한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시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 근대는 만주국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Readings 2021. 9. 3.
세금과 부동산에 관해 본 책들에 대한 짤막한 리뷰 스티븐 스미스, 세금이란 무엇인가: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할 세금의 기초 말 그대로 세금에 대한 입문서다. 영국의 조세제도 위주로 소개하지만, 세금 징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적 사고를 배울 수 있었다.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조세정의’를 이야기하지만, 효율성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세율을 높일 때 얼마나 조세순응을 사람들이 잘 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조세 징수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도덕적 자질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지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도덕성을 잘 버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효율성을 강조하면 실질적으로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꼴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금에 대한 지식들은 민주시민으로서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지식 중 하.. Readings 2021. 9. 2.
자넷 폴, <미래가 사라져갈 때, 식민말기 한국의 모더니즘적 상상력>: 전망없는 시대에 미래를 꿈꾸기 1 얼마 뒤 돌아오는 광복절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일본의 패전기념일이다. 광복이전 식민 말기를 항일투사들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눈물겹게 싸우고, 일제가 독립운동을 더욱 잔혹하게 탄압하던 시기로 생각하는 걸 잠시 멈추고 함석헌 선생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해방은 “우리가 자고 있을 때에 도둑같이” 왔다. 는 토론토 대학에서 한국문학과 문학사를 연구하는 학자 자넷 폴이 쓴 한국의 근대문학 비평이다. 크게 조선어로 글을 쓸 수 있었던 문화통치기(최명익, 서인식, 이태준, 박태원)와 민족문화를 말살하던 내선일체 통치기(최재서, 김남천) 두 시대 문인들의 소설과 평론을 검토하면서 그들의 시대인식을 살펴본다. 2 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해방을 앞둔 문인들의 시대인식에 관해 다루기 때문에 두고.. Readings 2021. 8. 11.
서동진 (2017). 지리멸렬한 기술유토피아. 창작과비평, 45(3), 284-299.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는 굉장했다. 각 정부 부처에서 대처 방안을 짜고, 지난 대선 주자들도 그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는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반면, 다른 누구는 이것이 굉장히 우리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 다 일견의 진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3차 산업혁명’이라 불렸던 ICT 혁명이 우리의 사회경제적 삶에 그다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술 변화가 낼 성과의 규모를 섣불리 확언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술변화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한 문제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서동진은 다른 대안이 모두 사라진 시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 Readings 2018.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