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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

천정환 ∙ 정종현, <대한민국 독서사>: 책 읽기에 대한 생각들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1. 9. 13.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다. 대학 이전의 이사에서 나는 뭐든지 다 버려도 좋다고 말씀 드렸는데, 대학 입학 이후로는 늘 책 좀 팔아라는 잔소리를 듣고도 절대 못 판다며 빡빡 우기다 결국 내 지갑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을 낸다. 사실 아직 부모님께 붙어 사는 까닭도, 내 힘으로 구할 수 있는 집에는 이 책들을 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로 차마 팔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책들 사이사이 꽂힌 기억들로 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남아있는 기억은, 내 대학시절 모든 기억들이 담긴 학교 앞 책방에서 만든 기억들이다. 역 앞의 빵집 앞 지하에 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완 달리 치열한 분위기의 인문사회과학 서적들로 빼곡히 차 있던 책장들 늘 웃으며 맞아주시던 지기님, 그리고 다른 대학시절 소중한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 그 책방이었다. 명맥은 지기님이 계속 이어 나가고 계시지만, 지금 그 공간은 없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샀던 책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촌동생에게 그 책방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데려갔는데, 나이차가 좀 나는 여자 동생이다 보니 지기님이 짖궂게 의심하셨다. 그러다 경제가 궁금하다 해서 이강국 교수의 칼럼집을 권해줬더니, 그제서야 여자 데려온 게 아니라 진짜 사촌동생이구나 하며 의심을 거두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시절 은사님 중 한 분께서 저자로 참여하신 이 책은, 어떤 책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왜 읽혔는지 연구한 독서사 책이다. 해방 이후부터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대학가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이런저런 의미를 갖고 읽힌 책들을 쭉 둘러볼 수 있다. 잡지 창간사를 통해 사회문화사를 추적한 전작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처럼 파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현대사를, 독서 대중의 눈으로 다시 기억해주는 책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어온 역사뿐만 아니라, <자유부인>처럼 사회적으로 큰 파란을 끌고 온 책도, 자기계발서의 역사도 함께 다뤘기에 더 좋았다. 한때 이름만 들어도 믿음직스러웠던 출판사들의 시작이나, ‘XX대 선정 100등 일상에서 접하는 책 문화의 연원들도 흥미롭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80년대 청춘들의 함께읽기. 2010년대에 청춘인 나와 내 친구들의 기억과 다른 점이 있다면, 80년대 청춘들은 원래 친했던 친구들과 커리큘럼을 함께 따라갔다면, 우리는 외롭게 혼자 공부하다 함께 읽기 위해 모여서 친구가 됐다는 것이다. 그 중 몇몇은 학자의 길을, 몇몇은 나처럼 생활인으로 돌아왔지만 만날 때면 함께 고민을 나누던 기억과 현재의 고민 모두 남아있는 듯 하다.

 

첫 장을 펴면서 짐작했던 그대로, <대한민국 독서사>는 그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면서 끝맺는다. 사상을 전파하고 계몽하던 책은 현재의 민주주의를 만든 밑거름이다. 사회의 진보는 몰라도 민주주의는 교양 있는 시민이 만들고, 또 지탱해낸다. 나는 그 정도만으로도 주변인들에게 책을 권하고 스스로도 계속 읽어나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책 읽어야 할 이유야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못 읽는 사정을 들어보면 복잡하다. 52시간 꽉 채워서 일하던 달에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그렇게 힘든지 처음 느꼈다. 또한, 사무직 노동자라 할 지라도, 하루 종일 숫자와 단어들의 조합만 읽다가, 문해력이 필요한 텍스트를 읽어내기란 여간 굳은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가고 좋은 책들을 찾는 분들을 위해 좋은 책 읽으면 리뷰는 꼭 써야겠다. 선생님, 좋은 책 리뷰에 이리 두루뭉실한 이야기만 잔뜩 해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