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s20

가야타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2012): '갖지 못한 나라'의 교의 1. "천황폐하 만세"의 기원에 대하여 애투 섬, 1943년 5월. 2,600여명의 일본군 수비대는 압도적인 미군 병력에 맞서 만세 돌격까지 감행한 끝에 거의 전멸한다. 미군 종군기자는 이 장면을 "영원한 생명을 믿는 충성의 화신"이라 기록했다. 같은 해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의 이름으로 간행된 『전진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라." 이 광기를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일본 군국주의의 비합리성, 천황 신앙의 광신, 동양적 정신주의의 잔재 같은 어구를 동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들은 미쳐 있었다"로 요약하는 것. 가타야마 모리히데(片山杜秀)의 《미완의 파시즘》(2012)은 오히려 그것이 가능했던 사상적 기원을 탐구한다. 저자는 '천황폐하 만세'의 광기가 광신자들의 .. Readings 2026. 4. 21.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지금도 책 읽기가 취미인 까닭 “What is your hobby?” 어린 시절 영어 교과서에 만난 이 가벼운 질문은, 한국말로 던져지는 순간 피하고 싶은 질문이 된다.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취미는 흥미로우면서도, ‘잘’해야 하는 취미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악기, 요리, 헬스 같은 것을 생각해 봐도 취미로 만들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 취미들은 잘하는 취미라는 걸 보여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악기는 연주를 들려주면, 요리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면, 헬스는 옷으로 감추고 있어도 눈에는 다 보인다. 책 읽기는 취미일까? 아무래도 면접에서 말할만한 취미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직장을 구하는 면접이든, 아니면 소개팅이라는 애인을 구하는 면접에서든, 어쩌면 흥미로운 정보를 얻는데, 보다 재미있고 노력도 덜 드는 .. Readings 2025. 7. 15.
박준영,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기술과 노동 유연화에 대한 다른 상상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이 책은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엮은 삼성전자 반도체의 혁신·성장의 과정이자 그 현장에서 땀 흘렸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반도체 불모지이자 국민소득 2천 달러 수준이던 1980년대 초 ‘경영진의 결단’으로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본격적인 사업 시작 10여 년 만에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그 과정에 1988년 삼성반도체통신에 입사해 2023저자박준영출판북루덴스출판일2023.09.05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는 내가 잠시 몸담았던 산업군의 옛날 이야기고 현재의 이야기 때문에 중간중간 킥킥대면서, 때로는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읽었다. 저자는.. Readings 2025. 4. 5.
박형서, 『낭만주의』: 투명하게 표현되는 SF 소설 낭만주의현실보다 정교한 설정, 우주만큼 무한한 상상력 소설 실험가 박형서가 생에 바치는 기발하고 애잔한 세레나데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날렵한 유머 감각으로 삶의 비극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농담의 악마’ 박형서의 다섯번째 소설집 『낭만주의』가 출간되었다. 소설쓰기라는 행위에 어떤 한계도 설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비슷한 가짜’가 아닌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해 실험을 거듭해온 작가는 2014년 여름부터 2017년 봄 사이에 발표한 이 6편의 중단편으로 자신 저자박형서출판문학동네출판일2018.07.11   문학은 잘 모르는 분야라 박형서의 단편소설을 모은 『낭만주의』는 비평을 먼저 읽고 나서 폈다. SF의 계보를 추적하면, SF는 과학적 요소가 ‘인지적 낯설게하기’를 수단으로 쓰이는 SF와 과학적 ‘인지의 확장.. Readings 2025. 3. 1.
김영란, 『판결 너머 자유』: 우리 사회는 분열사회에서 공존사회로 이행하고 있는가 판결 너머 자유  롤스가 꿈꾸던 다원주의의 토대: 중첩적 합의와 기본적 자유들  극단적인 대결 사회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의로운 다원주의 사회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가?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롤스의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가져온다. 『정의론』은 선험적(transcendental)이면서도 이성적인 사회계약의 내용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다. 그가 ‘무지의 베일’에서 합의될 수 정의의 내용의 원칙은 위계 없는 기본적 자유(들)의 체계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원칙이 되는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균등과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어떻게 사회계약을 존속시키면서도 안정적인 다원주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가의.. Readings 2025. 1. 4.
에로스의 재건을 위하여 - 정강산(2024), 「자본주의 구조위기의 리비도 형세: ‘암울한 세대’ 너머의 감정사를 향하여」 고백하건대, 나는 정신분석학에 관한 개념을 잘 모른다. 제대로 된 입문서 한 권 읽은 적은 한 번도 없거니와, 사회구조의 심층에 대한 분석에 정신분석학적 개념은 자리할 곳은 없고, 크게 의미있는 분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반면, 현상으로서 사회를 뒤덮는 감정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평균’ 내지는 ‘전체로서 사회’의 감정구조를 진단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화분석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이 빛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과학에 실린 정강산의 「자본주의구조위기의 리비도 형세: ‘암울한 세대’ 너머의 감정사를 향하여」는, 그런 의미에서 ‘청년’으로 호명되는 집단이 드러내는 징후들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며 동시에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위기가 이토록.. Readings 2024. 7. 3.
알랭 쉬피오, 『숫자에 의한 협치』: 수치의 객관성이라는 허상 근대성의 범주에 ‘계산적 합리성’을 넣지 않는 경우는 드물지만, 통치체제에서 계산적 합리성의 중요성은 내가 들어왔던 많은 비판이론들의 범주에서 과소평가되어 왔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관리 기술에 있어 계산적 합리성의 과잉이 기술혁신을 오히려 저해하는 역설을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알랭 쉬피오는 근대 통치성의 발전을 ‘수치’의 발전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즉, 계산적 합리성이 ‘수에 의한 조화’라는 이념으로, 근대적 통치 수단인 법이 왕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대체하는 권력으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치를 막는 법의 기능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법에 의한 통치가 숫자에 의한 협치로 대체 되고 있다는 주장은, 법이 효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효용계산에 따라 법의.. Readings 2022. 9. 18.
이원석,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 Long Live the King! 자기계발이여 영원하라 나에게 있어 일은 절대 못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직장인이라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산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과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곳이 직장이기에, 그곳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더 할애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내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에 종속된 자아로서의 ‘자기계발’을 싫어한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성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재테크와 운동, 더 나아가면 독서 같은 우아한 취미생활을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 Readings 2022. 9. 14.
폴 몰런드, <인구의 힘>: 인구 구조변화에 대한 두려움 2021년 마지막 책은 뭔가 20대를 마무리하는 느낌의 책이었으면 했는데, 결국 30대에 내가 고민해야 하는 주제를 여는 책이 되어버렸다. 『인구의 힘』은 인구 관점에서의 근대사다. 인구 성장의 물결에 따른 국가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와 사회 변동을 다룬다. 이 책의 미덕이 있다면, 문제로서 ‘인구의 위력’을 다룬다는 점이다. 즉, 그 옛날 멜서스 신부가 두려워했던 인구의 성장이 위협했던 풍요처럼 인구의 성장과 감소가 정치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 역사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멜서시안 트랩을 뚫고 인구가 성장했던 국가들은 늘 근대 제국으로 성장해왔다. 그 처음은 영국이고 독일, 러시아, 미국이 그러한 경로를 밟아왔고, 인구의 성장은 주변국에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성공적으.. Readings 2022. 1. 3.
진미윤∙김수현,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1권&2권: 주택정책의 역사적 이해 1권 글로벌 주택시장 트렌드와 한국의 미래 2권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 20대가 끝나가니 슬슬 동갑내기 친구들과 만날 때면 부동산이나 자산 이야기가 나오기 십상이다. 올라버린 집값에 분노하고 정부 정책을 있는 힘껏 미워해보지만, 그래 봐야 집 살 수 있는 타이밍에 못 맞춰 난 게 잘못이다. 그러니 선진국의 복지정책을 이상향으로 소개하는 이야기들에 너무 쉽게 현혹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선진국’들의 주택정책 변천과정을 다뤄준 책은 정말 귀하다.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주거복지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는지, 또 찬란했던 주거복지가 왜 지금은 작동을 하지 않는지, 그 그림자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뤘다. 책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는 아무 맥락 없이 이 책이 조리돌림을 당하.. Readings 2021. 12. 19.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 취업 준비생 시절, 내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10시쯤 느지막히 일어나서, 새로 뜬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괜찮은 회사가 보이면(아니, 신소재공학 전공자만 뽑는다고 하면) 자기소개서를 썼다.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취업스터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돌려보며 피드백을 하였고, 인적성 검사를 함께 준비했다. 시즌이 끝날 때쯤에는 면접 스터디를 하였고, 다 떨어지고 나면 ‘왜 떨어졌을까’ 자책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취업준비 이전엔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취업준비를 하면서 ‘여기 말곤 나를 받아줄 곳이 없구나’ 느꼈고, 역시나 이력서를 낸 50곳, 면접 20번을 통해 결국 붙은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들이 아마 나를 나름 성실한 회사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2009년에 초판이 발행.. Readings 2021. 11. 22.
미타니 타이치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19세기에서 마주친 현대 일본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을 보다 문득 메이지 유신이 궁금해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다. 박훈 교수의 , 를 읽고, 미타니 타이치로가 쓴 를 읽었다. 박훈 교수가 쓴 앞의 두 책이 메이지 유신까지의 혁명서사라면 이번에 읽은 책은 미타니 타이치로의 는 혁명서사도 근대화론으로 묶어서 일본 근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메이지 유신이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다. 박훈 교수가 말하듯 “당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조선은 열등했다기보다는 평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특이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중요하다. 간단히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조건에 대해 서술하자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 Readings 2021.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