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7 김문겸∙이일래∙인태정, <여가의 시대>: 여가가 주는 해방감 ‘쉴 때 뭐해요?’ 작년 요맘때 직장 선배들이 이 질문을 할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내 취미는 책 읽기인데 공대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던 나는 별종이었기에, 뭔가 다른 답을 해야만 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24시간 중 대부분을 일 하기 위해 쓰거나,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 하는데 쓰는데 그게 왜 중요하다고 느껴야 하나 싶었다. 회사에 출근한지 만 1년이 가까스로 지난 지금에야, 왜 쉴 때 뭐하는지가 정말 소중하다고 느낀다. 회사 일로 어떤 계획도 미리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침엔 달리고, 틈틈이 책 읽고, 제2외국어 공부하고, 근무시간만 딱 채우고 헬스장으로 뛰어갈 때 묘하게 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 Readings 2021. 9. 24. 천정환 ∙ 정종현, <대한민국 독서사>: 책 읽기에 대한 생각들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다. 대학 이전의 이사에서 나는 뭐든지 다 버려도 좋다고 말씀 드렸는데, 대학 입학 이후로는 늘 “책 좀 팔아라”는 잔소리를 듣고도 절대 못 판다며 빡빡 우기다 결국 내 지갑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을 낸다. 사실 아직 부모님께 붙어 사는 까닭도, 내 힘으로 구할 수 있는 집에는 이 책들을 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로 차마 팔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책들 사이사이 꽂힌 기억들로 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남아있는 기억은, 내 대학시절 모든 기억들이 담긴 학교 앞 책방에서 만든 기억들이다. 역 앞의 빵집 앞 지하에 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완 달리 치열한 분위기의 인문사회과학 서적들로 빼곡히 차 있던 책장들 늘 웃으며 맞아주시던 지기님, 그리고 다른 대학시절 소중한 .. Readings 2021. 9. 13. 한석정, <만주모던>: 오래 지속되는 만주국 박근혜 대통령 당시 흔히 ‘유신체제’라는 키워드로 한국정치 체제나 한국사회의 경직성을 분석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탄핵집회 이후 이 시대가 종결됐다는 자축과 함께 유신체제라는 말이 쏙 들어간 것 같다. 개발과 발전이 아니고도 더 좋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는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대체했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시간만 흐른다. 구체제가 몰락한 이후 단기간에 안정화된 신체제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만, 그 체제가 보여줄 수 있는 미래는 유신체제보다 더 빛날 수 있을까? 출간된 지 5년이 다 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이 책이 신간이었던 2016년에는 뭐가 오든 한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시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 근대는 만주국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Readings 2021. 9. 3. 세금과 부동산에 관해 본 책들에 대한 짤막한 리뷰 스티븐 스미스, 세금이란 무엇인가: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할 세금의 기초 말 그대로 세금에 대한 입문서다. 영국의 조세제도 위주로 소개하지만, 세금 징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적 사고를 배울 수 있었다.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조세정의’를 이야기하지만, 효율성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세율을 높일 때 얼마나 조세순응을 사람들이 잘 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조세 징수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도덕적 자질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지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도덕성을 잘 버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효율성을 강조하면 실질적으로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꼴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금에 대한 지식들은 민주시민으로서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지식 중 하.. Readings 2021. 9. 2. 자넷 폴, <미래가 사라져갈 때, 식민말기 한국의 모더니즘적 상상력>: 전망없는 시대에 미래를 꿈꾸기 1 얼마 뒤 돌아오는 광복절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일본의 패전기념일이다. 광복이전 식민 말기를 항일투사들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눈물겹게 싸우고, 일제가 독립운동을 더욱 잔혹하게 탄압하던 시기로 생각하는 걸 잠시 멈추고 함석헌 선생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해방은 “우리가 자고 있을 때에 도둑같이” 왔다. 는 토론토 대학에서 한국문학과 문학사를 연구하는 학자 자넷 폴이 쓴 한국의 근대문학 비평이다. 크게 조선어로 글을 쓸 수 있었던 문화통치기(최명익, 서인식, 이태준, 박태원)와 민족문화를 말살하던 내선일체 통치기(최재서, 김남천) 두 시대 문인들의 소설과 평론을 검토하면서 그들의 시대인식을 살펴본다. 2 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해방을 앞둔 문인들의 시대인식에 관해 다루기 때문에 두고.. Readings 2021. 8. 11. <가타카>: 디스토피아에서의 연대 오랜만에 를 한 번 더 봤다. 인간의지를 다룬 영화라는 생각 때문에 내 인생영화 중 한 편이지만 주인공을 에단 호크가 분한 빈센트가 아닌 주드로가 분한 빈센트라는 시각에서 보니 디스토피아에서의 연대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내가 봤던 는 인간 의지에 관한 영화였다. 주인공 빈센트는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나 우주비행사의 꿈 꾸는 것은 사치였지만, 노력 끝에 결국 해낸다. 자신의 운명을 버림으로써 역경을 이겨내는, 디스토피아 속에서 어떻게든 우주탐사를 보내는 가타카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서사로만 봤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동생 안톤과의 수영시합이다. 그는 어렸을 때 그의 동생과의 수영시합에서 이기면서 자신의 꿈을 꿔도 괜찮다고 믿고 가타카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그리고.. Movies 2021. 8. 10. <염력> Short Review: 판타지 없는 히어로물 오래전 본 영화에 관한 생각이 이제야 정리가 된다. 은 히어로물 특유의 스펙터클이 잘 살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남는 건 음울한 동시대사에 관한 기록이란 생각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위안이 되어준 영화다. 이 지시하는 사건이 무엇인지 기억한다면,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달라진다. 그것은 비단 주인공의 초능력 발휘가 긍정적인 결말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류승룡이 쓰는 염력은 볼 때마다 그 비현실성 때문에 스크린이 더 멀리 느껴진다. 희망조차 주지 않는다. 감동도 박진감도, 쾌감도 없다. 다른 영화에서 찾을 수 없는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철거용역과 싸우는데 사용했던 자신의 염력을, 주인공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소박하게 쓰는 모습.. Movies 2021. 8. 10. 서동진 (2017). 지리멸렬한 기술유토피아. 창작과비평, 45(3), 284-299.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는 굉장했다. 각 정부 부처에서 대처 방안을 짜고, 지난 대선 주자들도 그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는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반면, 다른 누구는 이것이 굉장히 우리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 다 일견의 진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3차 산업혁명’이라 불렸던 ICT 혁명이 우리의 사회경제적 삶에 그다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술 변화가 낼 성과의 규모를 섣불리 확언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술변화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한 문제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서동진은 다른 대안이 모두 사라진 시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 Readings 2018. 3. 4. <500일의 썸머>, 사랑이란 이름의 감정은 없다. 고등학교 때 개봉했을 때부터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매번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주는 느낌은 달랐다. 그 때 그 때 내가 느끼는 감정들 때문에 받는 메세지가 달랐다. 한 번은 썸머를 욕하기도, 또 한 번은 톰을 욕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전엔 자아의 성장이란 면에서 톰과 썸머를 둘 다 긍정하면서 이 영화를 한 동안 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톰이 뭘 잘못했는지에 맞추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 회의 때 표정이 이런 직원도 생산성만 좋다면 천조국에선 잘리지 않나보다... 톰은 스스로를 배반하는 삶을 산다. 대학 시절 건축을 전공했지만, 생계를 위해 카드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카드를 만든다. 본인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니 열정도 없고 흥미도 .. Movies 2018. 1. 25. [번역]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부상시켰다고?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낯선 단어이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측면을 잘 드러낸다.지난 수십년 간, 금융부문은 현저하게 성장해 경제 전체를 지배하는 위치까지 이르렀다. 몇몇 논자들은 금융의 부상을 정부정책의 결과라 주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에서의 규제완화가 월스트리트에 이익이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금융화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어 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즉 금융화는 이미 경제와 사회의 내적 경향에 의해 근본적 실제가 됐고, 정부정책은 금융의 이익에 따른 것이다.금융화는 1970년대에 시작돼 40여 년간 이어져 온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전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환의 뿌리는 기술과 노동조건의 근원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혁명은 아직 충분.. Translation 2017. 2. 1. [번역] 토마 피케티, 기본소득이냐 공정임금이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상기시킨다. 단지, 그 액수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연대소득제도(RSA, 프랑스 최저임금제도)에서 자녀가 없는 개인에게 월 530유로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충분하다고 여기지만 누군가는 800유로로 인상하길 원한다. 그러나 좌우를 가리지 않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는 최저 소득의 존재에 동의하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에 대해 ‘푸드 스탬프’를 지급하며, 사회국가는 겉으로 후견인 혹은 감옥의 책임을 맡는다. 나쁘지 않지만, 우리는 이에 만족할 수 없다. 기본소득 논의의 문제는 대부분 실제 문제를 검토하지 않은 채로 사회정의를 저렴하게 해결한다는 것이다. 정의의 문제는 월 530유로냐 8.. Translation 2017. 1. 28.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