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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너무나 강렬한 계몽적 성취 110만명. 자극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에, 숫자로 들어서는 아우슈비츠에서의 학살의 잔혹성이든, 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는 이 둘을 감각하게 해주는 너무나 강력한 계몽적 성취를 이뤄냈다.단 수십 초를 위한 105분 카메라는 시종일관 루돌프 회스 중령과 그 가족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비춘다. 온실도 가꾸고 물놀이도 하면서 평화롭게 전원생활을 하는 듯 하지만, 그들의 집은 수용소 담벼락 바로 옆에 있다. 회스 중령은 아우슈비츠 소장이고 아내는 이 생활을 정말 만족해하며 친정어머니를 초대해 자랑한다. 회스 중령 가족에게 수용소에서의 잔혹한 폭력은 일상이기에 이 가족의 평온함은 역겹다.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들에서 보석과 옷가지를 빼앗은 일은 부인들 모임에서 시시껄렁한.. Movies 2024. 6. 27.
<더 랍스터>: 기능주의적 극단의 통치가 선사하는 대안 없는 로맨스 올 초에 영화광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또 다른 친구에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다른 영화를 추천 받아서 봤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기괴한 설정으로 일상적인 소재임에도 쉽사리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든 상상력과 그에 따른 전개만큼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서사 속에서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계관 설정이 주는 기괴함에 묻혀 서사가 주는 재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이조차 감독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예상범위 내에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이 주는 역겨움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도시적 정경과 자연의 풍광들만으로도 시간을 내서 보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배경은 관계에 있어 극단적인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심지.. Movies 2024. 6. 23.
높은 마음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낮은 몸에 갇혀있대도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밝은 눈으로 바라볼게어둠이 더 짙어질수록인정할 수 없는 모든 게사실은 세상의 이치라면”- 9와 숫자들, 中 대학시절 내가 가장 고민을 많이 해온 주제는 이른바 주체와 구조의 문제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그래서 그만큼 내게는 이를 논할 때 빼먹어서는 안 될 주제들이 많다. 그래서 이따금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과 관계가 가까워질 때면 어떤 식으로든 나오기 마련이지만, 늘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아쉽다.그럼에도 제한적인 대화만 나누더라도 신기하리만치 말이 잘 통한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오래된 벗을 우연히 마주친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 다.. Thoughts 2024. 5. 23.
<헤어질 결심>: 윤리 없는 사랑 영화관에서 두 번, OTT 서비스로 한 번 더 봤다. 처음 두 번은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화면구성이나 스마트 기기 문화가 완전히 녹아든 모습을 재현해내는 영화만의 특징에 관심을 갖고 봤다. 나는 영화 볼 때 감정선이 화면구성에 녹아든 장면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해준이 서래를 잠복수사하며 감시하는 장면을 비롯해서 아직 서로 호기심에 사찰에서 데이트를 하며 북을 사이에 둔 장면 등 구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운 장면이 많았다.둘째로 08년도 아이폰 출시 이래로 극 전개 자체에 스마트 기기가 이렇게 스며들어 사용되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문화다. 다소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이런 장면이 불쾌하긴 했지만 스마트 기기가 자연스레 영화에 녹아들 수 있다는 .. Movies 2023. 7. 21.
알랭 쉬피오, 『숫자에 의한 협치』: 수치의 객관성이라는 허상 근대성의 범주에 ‘계산적 합리성’을 넣지 않는 경우는 드물지만, 통치체제에서 계산적 합리성의 중요성은 내가 들어왔던 많은 비판이론들의 범주에서 과소평가되어 왔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관리 기술에 있어 계산적 합리성의 과잉이 기술혁신을 오히려 저해하는 역설을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알랭 쉬피오는 근대 통치성의 발전을 ‘수치’의 발전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즉, 계산적 합리성이 ‘수에 의한 조화’라는 이념으로, 근대적 통치 수단인 법이 왕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대체하는 권력으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치를 막는 법의 기능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법에 의한 통치가 숫자에 의한 협치로 대체 되고 있다는 주장은, 법이 효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효용계산에 따라 법의.. Readings 2022. 9. 18.
이원석,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 Long Live the King! 자기계발이여 영원하라 나에게 있어 일은 절대 못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직장인이라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산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과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곳이 직장이기에, 그곳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더 할애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내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에 종속된 자아로서의 ‘자기계발’을 싫어한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성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재테크와 운동, 더 나아가면 독서 같은 우아한 취미생활을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 Readings 2022. 9. 14.
폴 몰런드, <인구의 힘>: 인구 구조변화에 대한 두려움 2021년 마지막 책은 뭔가 20대를 마무리하는 느낌의 책이었으면 했는데, 결국 30대에 내가 고민해야 하는 주제를 여는 책이 되어버렸다. 『인구의 힘』은 인구 관점에서의 근대사다. 인구 성장의 물결에 따른 국가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와 사회 변동을 다룬다. 이 책의 미덕이 있다면, 문제로서 ‘인구의 위력’을 다룬다는 점이다. 즉, 그 옛날 멜서스 신부가 두려워했던 인구의 성장이 위협했던 풍요처럼 인구의 성장과 감소가 정치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 역사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멜서시안 트랩을 뚫고 인구가 성장했던 국가들은 늘 근대 제국으로 성장해왔다. 그 처음은 영국이고 독일, 러시아, 미국이 그러한 경로를 밟아왔고, 인구의 성장은 주변국에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성공적으.. Readings 2022. 1. 3.
진미윤∙김수현,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1권&2권: 주택정책의 역사적 이해 1권 글로벌 주택시장 트렌드와 한국의 미래 2권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 20대가 끝나가니 슬슬 동갑내기 친구들과 만날 때면 부동산이나 자산 이야기가 나오기 십상이다. 올라버린 집값에 분노하고 정부 정책을 있는 힘껏 미워해보지만, 그래 봐야 집 살 수 있는 타이밍에 못 맞춰 난 게 잘못이다. 그러니 선진국의 복지정책을 이상향으로 소개하는 이야기들에 너무 쉽게 현혹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선진국’들의 주택정책 변천과정을 다뤄준 책은 정말 귀하다.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주거복지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는지, 또 찬란했던 주거복지가 왜 지금은 작동을 하지 않는지, 그 그림자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뤘다. 책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는 아무 맥락 없이 이 책이 조리돌림을 당하.. Readings 2021. 12. 19.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 취업 준비생 시절, 내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10시쯤 느지막히 일어나서, 새로 뜬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괜찮은 회사가 보이면(아니, 신소재공학 전공자만 뽑는다고 하면) 자기소개서를 썼다.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취업스터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돌려보며 피드백을 하였고, 인적성 검사를 함께 준비했다. 시즌이 끝날 때쯤에는 면접 스터디를 하였고, 다 떨어지고 나면 ‘왜 떨어졌을까’ 자책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취업준비 이전엔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취업준비를 하면서 ‘여기 말곤 나를 받아줄 곳이 없구나’ 느꼈고, 역시나 이력서를 낸 50곳, 면접 20번을 통해 결국 붙은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들이 아마 나를 나름 성실한 회사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2009년에 초판이 발행.. Readings 2021. 11. 22.
미타니 타이치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19세기에서 마주친 현대 일본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을 보다 문득 메이지 유신이 궁금해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다. 박훈 교수의 , 를 읽고, 미타니 타이치로가 쓴 를 읽었다. 박훈 교수가 쓴 앞의 두 책이 메이지 유신까지의 혁명서사라면 이번에 읽은 책은 미타니 타이치로의 는 혁명서사도 근대화론으로 묶어서 일본 근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메이지 유신이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다. 박훈 교수가 말하듯 “당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조선은 열등했다기보다는 평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특이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중요하다. 간단히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조건에 대해 서술하자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 Readings 2021. 11. 2.
앨프리즈 W. 크로스비, <수량화 혁명>: 측정가능하다는 믿음의 기원 근대에 이르러 서구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원인은 자연과학과 기술, 그리고 무기다. 그러한 배경에는 종교나, 철학 등 서구 근대문화가 달성한 업적들도 있었겠지만,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중앙집권제 국가들보다 월등한 생산력과 파괴력, 그리고 지배력을 갖출 수 있었던 까닭은 ‘정량적 사고’다. 앨프리드 W. 크로스비의 은 서구문명에서 ‘양적’ 실재가 ‘질적’ 실재를 대체하고, 나아가 양적인 변형을 일으키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켜온 역사를 다룬다. 책은 결론 격인 3부를 제외하고, 수량화와 시각화 두 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측량과 표준화 등을 통해 수량적 사고가 자리잡아 근대 ‘수량화 혁명’의 기초가 쌓이는 필요조건들을 다루는 한편 2부에서는 그러한 사고들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라는 방법을 통해 ‘과학’.. Readings 2021. 10. 4.
김유원, <불펜의 시간>: 평범한 모욕의 시대에 건내는 작지만 단단한 위로 휴가 가기 전 날 ‘홧김에’ 주문한 을 다 읽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책 뒤편에 써진 이 투박한 문구에 마음이 이끌렸다. 휴가에 돌아와서는 단숨에 읽었다. 평소에 소설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읽는 데 힘이 들지 않았다. 은 ‘생존주의’ 사회에 사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준삼, 혁오, 기현. 준삼은 야구선수를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로 한 직장인, 혁오는 어릴 적 트라우마로 볼넷을 던지는 투수, 기현은 여자이기에 프로 야구선수가 되지 못한 스포츠신문 기자다. 준삼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혁오는 ‘진호리그’와 정규리그를 함께 뛰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기현은 스포츠신문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각자가 겪는 삶은 모욕적이다. 준삼은 ‘평범한 삶’을.. Readings 2021.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