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관에서 두 번, OTT 서비스로 한 번 더 봤다. 처음 두 번은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화면구성이나 스마트 기기 문화가 완전히 녹아든 모습을 재현해내는 영화만의 특징에 관심을 갖고 봤다. 나는 영화 볼 때 감정선이 화면구성에 녹아든 장면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해준이 서래를 잠복수사하며 감시하는 장면을 비롯해서 아직 서로 호기심에 사찰에서 데이트를 하며 북을 사이에 둔 장면 등 구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운 장면이 많았다.

둘째로 08년도 아이폰 출시 이래로 극 전개 자체에 스마트 기기가 이렇게 스며들어 사용되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문화다. 다소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이런 장면이 불쾌하긴 했지만 스마트 기기가 자연스레 영화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된 영화였다. 수사 중 드는 생각을 스마트 워치로 녹음기를 켜고, 번역기 사용하고, 또 스마트폰에서 해발고도를 측정하는 등 해준을 잘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것은 세 번째 봤을 때 열심히 봤던 주제의식이다. 나는 그것이 1)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사랑 2) 윤리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의 장르는 로맨스 이전에 범죄물이다. 부산과 이포에서 주인공 서래를 둘러싼 두 번의 사건과 막간의 질곡동 살인사건까지 포함 세 개의 사건이 극의 주제를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한다.
먼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사랑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작가의 인터뷰에서 정서경 작가는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은 누구와 만날까 하는 생각에서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범한 중산층인 해준 부부의 관계도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커플들의 관계는 더욱 안 좋아 보인다. 서래의 전남편은 서래를 상습적으로 폭행하였고, 그리고 다음 남편도 서래를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이용하고 그 때문에 서래는 폭력에 노출되었다.

구성적으로 이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이 마치 질곡동 살인 사건에 함축되어 있어서다. 질곡동 사건을 수사하는 해준에게 산오의 소재를 가인이 있는 미용실로 지목하는 장면에서 해준의 반론을 한 번에 잠재워버리는 서래의 대사가 다음 질문으로 안내한다.
“죽일 만큼 좋아한 여자네?”(각본집에는 ‘죽을 만큼’이라고 나와있지만, 나는 ‘죽일 만큼’으로 들었고 서래 캐릭터 상 죽일 만큼이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해준이 경찰로서의 자부심에 서래에게 다가가기를 머뭇거렸던 것과 달리, 서래는 그러한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임을 단번에 보여주는 대사다. 곧이어 해준이 산오를 쫓아 대면했을 때 산오는 좀 더 첫 번째 질문을 아주 적확하게 표현한다.
“여자들은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하고 자요? 나도 쓰레기지만.”
두 번째로 윤리 없는 사랑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부산에서 1막 마지막에 해준은 윤리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 그리고 2막에서 서래는 해준을 지켜내기 위해 윤리를 포기하는데, 막간극에서 확인 된 두 사람의 차이는 다시 드러난다. 해준에게 ‘자부심’은, 직업윤리는 정말 큰 문제였지만, 반대로 서래에게는 전직 간호사임을 넘어 윤리규범은 사랑 앞에서 바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나도 그렇고 영화도 서래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다. 극 전체를 끌고 가는 것이 다른 여타 로맨스 영화에서 외부 사건에 흔들리는 서래의 감정이 아니라 서래가 자신의 사랑을 위한 의지로서 사회규범을 부정한다는 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고 또 여러 번 보게 됐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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