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is your hobby?” 어린 시절 영어 교과서에 만난 이 가벼운 질문은, 한국말로 던져지는 순간 피하고 싶은 질문이 된다.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취미는 흥미로우면서도, ‘잘’해야 하는 취미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악기, 요리, 헬스 같은 것을 생각해 봐도 취미로 만들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 취미들은 잘하는 취미라는 걸 보여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악기는 연주를 들려주면, 요리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면, 헬스는 옷으로 감추고 있어도 눈에는 다 보인다.
책 읽기는 취미일까? 아무래도 면접에서 말할만한 취미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직장을 구하는 면접이든, 아니면 소개팅이라는 애인을 구하는 면접에서든, 어쩌면 흥미로운 정보를 얻는데, 보다 재미있고 노력도 덜 드는 대체제들은 많이 나와 있는 오늘날, 이제는 LP판으로 음악듣기처럼 고풍스러운 취미 문화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분과 나, 독서대중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책 읽기가 앎을 확장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소설과 같은 문학을 원작으로 드라마, 영화와 같은 ‘미디어 믹스’가 나와도 우리는 원작의 감동을 파괴했다며 제작진과 문화산업에 분노하고, 또 때로는 드라마나 영화이면 충분한데 소설로 읽는 맛이 없다며 불평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 책 읽기가 취미이고 타인에게 책 읽기라는 취미를 매력적인 취미로 권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책 읽기 취미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선뜻 책 읽기가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고상해 보이는 척 혹은 배운 척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서는 참 타인에게 그 맛을 알려주기도, 어떻게 책 읽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취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지원의 『지금도 책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반갑고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런 고민을 해명해 주고, 정말 오랜만에 책 읽기의 가치와 방법에 대한 수다를 나눌 수 있어서였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각 단계마다 책 읽기라는 취미를 안내하는 충실한 취미 안내서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문해력이 아닌 좋은 글의 생산의 관점과 좋은 글에 대한 접근성으로 초점을 바꾸어,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를 생산자에게서 찾아보자 제안하는 1부, 아직까지 책 만큼 믿을만한 고품질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2부, 더 책을 잘 읽고 즐기기 위한 방법을 안내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 읽는 취미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싶은 나 같은 독자부터, 지인과 책 읽기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거나, 아니면 군데군데 숨어있는 작가의 책 읽기 취미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은 독자에게까지 이 책은 실용서 역할을 하기도, 위트있는 농담 에세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1부, ‘잃어버린 즐거운 읽기 경험을 찾아서’다. 기자인 저자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독자가 왜 줄어드는지 고심한 부분이기에, 사뭇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글’에 대한 스스로 잊고 있던 갈망도 일깨워 줬다. 오늘날 독서문화는 왜 쇠퇴하고 있을까?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이 읽기를 일부 대체해 주는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고 더 이상 읽기를 선택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사실에 비추어, 저자는 ‘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책 좀 읽어라’는 어린 시절 잔소리와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접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처음엔 ‘엥?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이 없어서 읽고 싶은 책도 다 못 읽고 있는데?’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사 뉴미디어 팀에서 일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의 반응을 경청한 경험은 저자의 주장을 못 이기게 만든다. 저자의 경험상 독자는 좋은 기사를 소개하는 SNS 피드에는 호응이 좋았고, 정성 없는 기사에 관한 소개 피드에는 안 좋은 댓글들이 달렸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을 깨우고∙깜짝 놀라게 하고∙감탄하게 하고∙배꼽을 잡게 하고∙때론 울상 짓게 만드는 좋은 글을 읽고 싶어 한다.” 즉, 읽기 문화의 쇠퇴와 무관하게 정성이 듬뿍 들어간 진실되고 좋은 글을 읽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대체제인 전자책부터 인터넷 상의 글들이나 영상 정보까지, 그 욕망을 가장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수단은 언제나 종이책 읽기였고 앞으로도 종이책 읽기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런데 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그 욕망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걸까? 어쩌면 책은 콘텐츠 시장에서 더 이상 유튜브, 넷플릭스에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소비자가 다시 읽는 선택을 하게끔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생산자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자가 ‘읽을 맛‧읽을 가치가 있는‧읽을 수 있는 글’을 생산하고, 독자로 하여금 양질의 텍스트에 접근하기 쉽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유머와 재치 있는 재미있는 글도 부족하고, 좋은 읽기 경험을 할 기회가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물론, 과거엔 책 모임 함께 했던 학구파 친구들도 지식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을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고, 흡입력 있는 다큐멘터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책이 재미만으로 경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세련된 유머감각을 가진 텍스트가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책 읽기가 지식‧정보처리 노동의 일부로 책을 읽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취미라면, 순수한 깨달음의 감동에도 구석구석 소소한 재미가 조금은 곁들여지는 것을 바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왜 책이 읽기 경험에 좋은 매체인지 고민해볼 차례다. 인터넷 보급 이후 수십년 동안 방대한 온라인 상에 텍스트가 축적되었고, 그 텍스트들도 하이퍼링크를 통해 수평적으로 정보가 조직되었다. 또한 검색엔진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정보를 대신 검색하고 읽어서 정리해주기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디어에서는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 서비스들을 잘 활용하는 능력이 경쟁력인 것처럼 표상되고 학습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리는 시대에, 과연 책 읽기는 정보 습득을 위한 가장 훌륭한 읽기 경험일까? 2부에 의하면 여전히 그렇다. 온라인 텍스트 상품은 체류 시간 동안 광고를 보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에, 그 속에서 독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보의 신뢰성 측면에서도 인터넷의 수평적 정보 조직과 달리, 출처에 위계가 있는 책에서는 그 원천을 더 잘 알 수 있다. 접근 가능성 관점에서도 인터넷 상에서는 하이퍼링크로 정보가 조직되어 있어 있다고 하더라도 책만큼 분류가 적절히 되기 어렵다. 따라서 모든 정보를 책 읽기로만 수집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가 새뮤얼 존슨을 인용하여 이야기하듯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는 지식’, ‘알고자 하는 정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지식’은 구별되기에, 더 잘 찾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시작에는 책 읽기 만한 것이 없다.
이제 책 읽을 준비가 다 되었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고민은 ‘잘 읽는’ 방법이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악기 연주, 요리, 헬스와 달리 책 잘 읽는 건 남들에게 굳이 인정 받을 필요가 있는 취미는 아니지만, 잘 읽어야 우리가 아는 이 재미를 주변의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안내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된다. <너의 모든 것> 주인공처럼 초판본을 수집하고 (어쩌면 사람도 가둘 수 있는) 유리 케이지를 마련 하지 않고도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무엇일까? 3부에서는 ‘부담 없이, 중심 없이, 대책 없이 읽’는 해찰하는 책 읽기, 책 고르는 방법, 인터뷰어처럼 대화하듯 읽기, 메모하며 읽기, 사고의 발전과 확장을 위한 읽기 등의 방법을 안내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은 나가는 말에 나오는 ‘쓰기’ 위한 ‘읽기’다. 1부에서도 언급되듯 문해력은 읽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책 읽기란 취미의 목적은, 읽고 ‘말’로든 ‘글’로든 쓰고 소통하기 위함이었다고 믿는다. 내가 “나무야 미안해, 아니 데이터 센터에 꽂혀있을 메모리 반도체 만드는데 쓰인 모래야 미안해” 외치면서도 서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책 읽기를 매개로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어릴적 어머니에게 동화책 한 권 더 읽어달라고 조르던 시절부터, 대학생이 되어 학교 도서관의 장대한 서가를 헤매다가 대학가 외진 곳에 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은신처 삼아 책 모임을 하기까지, 책 읽기는 언제나 타인과 함께하는 경험을 수반해왔던 것 같다. 요즘엔 주변에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이 없어서, 서평을 좀처럼 찾기 힘든데 깨달음을 주는 책을 읽을 때마다 블로그에 서평을 쓴다. 그 책 제목을 검색어로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이름도 모르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우린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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