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마지막 4부작 소설 <풍요의 바다>를 읽고 있다. 『봄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학생이었다면,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두번째 책 『달리는 말』에서는 기요아키의 친구이자 학생이었던 혼다는 판사가 되어 있다. 이 글은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달리는 말』의 주인공 이사오가 '쇼와 신풍련' 사건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수사받고 재판을 받는 과정을 법조의 시각에서 해설한다. 법적 쟁점도 다루겠지만, 날카로운 변론 기술을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소설의 배경, 곧 이사오가 체포되고 재판받는 시점은 1933년, 쇼와 8년이다. 이때 일본에 적용되던 형사절차법은 1922년에 제정되어 1924년부터 시행된 이른바 '다이쇼 형사소송법'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형사절차의 여러 원칙 영장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자백배제법칙, 전문법칙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일본에 도입되었다. 그러니 이사오가 받은 처우를 지금의 잣대로 읽으면 위법투성이로 보이지만, 당시 법으로는 상당 부분이 적법했다. 이 간극이야말로 II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중 적용법은 다이쇼 형소법으로, 비교 대상은 현행 한국법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I. 사안의 개요
이사오는 검도에 전념하며 자란 스무 살의 청년이다. 그는 야마오 쓰나노리의 『신풍련사화』를 읽고 깊은 감화를 받는다. 신풍련은 메이지 초기, 폐도령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서구화 정책에 맞서 칼 한 자루로 근대적 보병대에 돌격하고 패배하자 줄지어 할복한 구마모토의 사족 집단이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라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忠)이었다. 서양 문물에 더럽혀지기 전의 천황 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그 뜻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필사의 충' 바로 이것을 이사오는 자신의 아름다운 목적으로 받아들인다. 세계 대공황 이후의 만성 불황, 도호쿠의 대흉년과 농촌의 궁핍, 런던 군축조약이 가져온 굴욕을 보며 이사오는 이 모든 재앙의 책임을 정치인과, 그들을 사익으로 조종하는 재벌 수뇌부에게 돌린다. 천황의 빛을 가로막는 먹구름이 그들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동지들과 함께 재계 거물들을 단검으로 암살하고 곧바로 할복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거사의 실체는 사실 빈약했다. 재벌 암살 계획은 준비 단계에서 무산되었다. 그러나 검사국이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들이 천황의 직접 통치를 바라 황족으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명분으로 '황족인 하루노리 왕자에게 대명(大命)이 내렸다'는 거짓 내용의 전단지를 등사기로 몰래 인쇄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 이들은 결행을 위해 보유하던 일본도를 팔아 단검 여섯 자루로 바꾸어 동지 열두 명에게 한 자루씩 돌아가게 했다.
이사오는 결국 아버지 이누마의 밀고로 연행되었고, 동지 열두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검사는 이 사건을 가능하면 내란예비죄로 키우고 싶어 했으나, 예심 종결 결정문은 결국 살인예비죄만을 공소사실로 삼아 사건을 도쿄 지방법원 공판에 부쳤다. 혼다는 판사직을 버리고 무료로 이사오의 변호인이 된다. 이 글은 변호인 혼다가 체포에서 판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이사오를 구하기 위해 벌인 위법과 합법을 오가는 사법활극을 법조인의 관점에서 돌아보고자 한다.
II. 체포와 구속
이사오의 체포는 적법한가 — 영장 없는 체포
먼저 체포다. 이사오는 아버지의 밀고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런데 소설은 체포의 절차를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영장이 제시되었다는 언급도, 현행범이라는 정황도 없다. 그냥 연행되어 검거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한국법으로 이 장면을 따져보자. 현행 형사소송법상 사람을 체포하려면 원칙적으로 판사가 발부한 체포영장이 있어야 하고(영장주의),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예외는 현행범 체포와 긴급체포뿐이다. 이사오에게 이 둘 중 하나가 성립하는지가 관건이다.
먼저 현행범이다. 이사오의 죄목은 살인예비다. 그렇다면 '예비행위'를 하는 자도 현행범이 될 수 있는가? 사실 이 물음은 예비죄에 고유한 '실행행위'가 있는가라는 다소 근본적인 쟁점에 관한 것이다. 통설인 발현형태설은 예비죄를 독립된 범죄가 아니라 기본범죄의 수정된 형태로 보아 대체로 예비 자체의 실행행위성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범죄설은 예비행위 그 자체가 독자적 실행행위라고 본다. 현행범인은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형사소송법 제211조 제1항)인데, 예비에 실행행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실행' 개념에 예비행위를 끼워 넣기가 어려워진다. 한편 판례는 살인예비죄의 '준비행위'에 관해, 단순한 범행 의사나 계획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도7150 판결). 이사오가 일본도를 팔아 단검을 마련한 행위는 바로 그런 '외적 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문제는 그 외적 행위가 언제 있었는가다. 현행범의 '실행 직후'는 시간적·장소적 접착성을 요구하고, 판례는 이를 꽤 엄격하게 본다. 범행 종료 약 40분 후의 체포는 현행범성을 부정했고(대법원 2007. 4. 13. 선고 2007도1249 판결), 약 25분 후는 인정했다(대법원 2006. 2. 10. 선고 2005도7158 판결). 그런데 이사오가 단검을 마련한 것은 11월 18일, 체포는 그로부터 열흘이 더 지난 뒤다. 예비행위의 '실행 직후'라고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본래 의미의 현행범으로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사오는 단검을 마련한 '예비'만이 아니라 동지들과 거사를 합의한 '음모'로도 의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사오와 동지들이 아지트에 모여 거사를 논의하던 바로 그 현장에서 검거되었다면, 이미 지나간 단검 매매가 아니라 '지금 진행 중인 음모'를 근거로 현행범 체포를 구성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음모는 두 사람 이상의 합의가 성립하는 순간 기수에 이르는 즉시범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뒤에는 그 위법한 상태가 남아 있을 뿐, '음모를 실행하는 중'이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현행범 체포는 범죄가 지금 행해지고 있음이 명백할 것을 요구하는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외관만으로 '바로 지금 합의가 이루어지는 중'임을 수사기관이 명백히 인식하기는 어렵다. (음모죄의 현행범 체포 가부를 정면으로 다룬 판례나, 그 실행행위성을 독립적으로 논한 학설은 찾기 어려웠다. 음모라는 범죄 형태 자체가 현행범 법리와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는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긴급체포는 어떤가. 살인예비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니 '장기 3년 이상'이라는 긴급체포의 대상범죄 요건은 충족한다. 그러나 긴급체포가 성립하려면 "긴급을 요하여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 즉 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야 한다(제200조의3). 이사오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밀고로 붙잡혔다. 수사기관이 사전에 정보를 쥐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 긴급성이 없다면 긴급체포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는 경로가 준현행범이다. 형사소송법 제211조 제2항 제2호는 "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흉기 그 밖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때"를 현행범으로 본다. 이사오 일당이 살인에 쓸 단검을 소지한 채 아지트에서 일거에 검거되었다면, 이 준현행범 조항으로는 영장 없는 체포가 적법하게 구성될 여지가 있다(다만 헌법이 명문화한 것은 현행범뿐이어서 준현행범 규정 자체의 위헌 여부를 두고는 다툼이 있다). 정리하면, 이사오의 체포는 한국법으로 보아도 '당연히 위법'인 것이 아니라, 긴급체포로는 어렵고 준현행범으로만 적법하게 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33년 일본에는 이렇게 따질 근거 자체가 없었다. 영장주의는 전후 신헌법(제33조, 제35조)과 그에 따른 1948년 신형사소송법이 비로소 도입한 원칙이다. 다이쇼 형소법 아래에서 체포·구류 같은 강제처분의 권한은 예심판사와 검사에게 폭넓게 주어져 있었고, 법관이 사전에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통제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사건은 사상범 사건이다. 치안유지법 체제에서 사상범에 대한 신체 구속은 일상이었다. 즉 이사오의 체포는, 지금 보면 영장 문제를 안고 있지만, 당시 일본법으로는 적법했다. 혼다가 체포의 위법을 문제 삼는 장면이 없는 것은 변호인의 태만이 아니라, 다툴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속 중의 수사는 적법했는가 — 변호인의 접견교통권, 위법수집증거배제
체포보다 무거운 것은 구속 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두 장면이 특히 눈에 띈다.
하나는 접견의 차단이다. 이사오는 교도소에서 늘 독방에 갇혀 지냈고, 변호인 혼다와의 면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예심판사에게 언제 면회가 되느냐고 묻자 예심판사 자신도 그 조치에 불만이라는 기색을 내비치면서 "접견 금지가 풀려야지요"라고 답한다. 그것을 금지한 것은 "검사국"이었다.
현행 한국법으로 보면 이 대목은 명백한 헌법 문제다. 헌법 제12조 제4항은 체포·구속된 사람이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그 핵심이 바로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 접견교통권을 헌법에서 직접 우러나오는 기본권으로 본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아직 선임되지 않은 '변호인이 되려는 자'의 접견교통권까지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헌재 2019. 2. 28. 2015헌마1204). 그러니 검사국이 변호인 접견을 임의로 차단한 것은, 지금이라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침해된 절차 위에서 받아낸 진술이라면, 현행법에서는 증거로 쓸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하고,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얻은 2차적 증거까지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본다(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도2094 판결). 다만 절차 위반이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형사사법 정의에 반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 증거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변호인 접견교통권처럼 헌법이 직접 보장한 권리를 침해해 얻은 진술은 이 예외에 들기 어렵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은 그 자체로 근대 형사소송법의 이상인 국가권력의 통제를 상징한다.
또 하나는 고문이다. 이사오는 신문 중에 좌익 사상범을 고문하며 나오는 비명을 듣고, 자신을 신문하는 경찰에게 "나도 고문하라"고 소리친다. 좌익에게는 고문이 가해지는데 우익 청년인 자신에게는 그러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이자, 그 비대칭이 곧 자신의 순수를 의심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은 이사오에게 여러 배려를 해주고, 재판장조차 그의 진술에 홍조를 띠는 장면이 나온다. 권력은 우익 청년의 '순수'를 좌익의 위협과는 전혀 다르게 다루었다.
지금의 법이라면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그 자체로 증거에서 배제되고(자백배제법칙, 헌법 제12조 제7항·형사소송법 제309조), 고문 같은 위법한 절차로 수집한 증거 전체가 배제된다(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그러나 이 원칙들 역시 전후의 산물이다. 다이쇼 형소법 아래에서는 수사 단계에서 작성된 공술조서의 증거능력이 폭넓게 인정되었고, 자백배제나 전문법칙 같은 증거능력 제한 장치가 없었다. 전전의 이 구조를 가리켜 검찰관 주도로 재편된 '규문주의적 검찰관 사법'이라 평가하는 견해가 있는 까닭이다.[1] 수사기관이 신문으로 받아낸 진술이 곧 재판의 토대가 되는 구조였다.
예심제도란?
체포 부분을 마치기 전에, 앞서 몇 번 등장한 '예심판사'와 '예심'이라는 말을 짚어보자. 지금 한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다이쇼 형소법에서 예심(豫審)은 공판에 앞서 예심판사가 사건을 비공개로 조사해, 이를 정식 공판에 회부할지 아니면 면소(免訴)할지를 결정하는 절차였다. 예심판사는 소환·구인·구류·검증·물건 차압 같은 강제처분 권한을 쥐고 있었다. 혼다가 "예심 단계에서 면소되기를" 바랐다는 것은 바로 이 절차에서 사건이 공판까지 가지 않고 종결되기를 기대했다는 뜻이다. 그 희망은 "이 사건은 도쿄 지방법원 공판에 부친다"는 예심 종결 결정으로 꺾인다.
일본에서 예심제도는 전후 형사소송법 개혁에서 폐지되었다. 법관이 수사·증거수집부터 재판까지 떠맡는 구조는 재판부가 미리 심증을 형성해 공판을 형해화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예단 배제, 공소장 일본주의). 한국 역시 예심제도를 두지 않는다.[2] 그러니 『달리는 말』의 법정 장면에 등장하는 예심은,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쇼와 시대의 제도다. 이사오가 통과한 예심 절차는 오늘날의 법정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III. 법정 밖에서의 변론 — 전단지는 어떻게 사라졌나: 변호인의 증거인멸교사
혼다의 변론에서 가장 능란하고, 동시에 가장 명백히 위법한 장면은 법정이 아니라 황족의 응접실에서 일어난다.
문제의 물건은 한 장의 전단지다. 이사오 일당이 결행 직후 뿌리려고 등사기로 찍어둔 것으로, 거사에 하루노리 왕자가 연루된 것처럼 왕자에게 대명이 내렸다는 선전문이다. 검사국이 이 전단지에 경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빈약했던 실제 암살 계획과 달리, 이 전단지는 사건을 단순 살인예비에서 황실을 끌어들인 더 무거운 사건으로 키울 수 있는 고리였기 때문이다. 혼다는 이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왕자를 찾아가 짐짓 '전하를 위하는' 어조로 위험을 일러준다. 그러고는 자신에게는 그것을 없앨 힘이 없으나 전하에게는 있다고 말한다. 궁내 대신에게 한마디만 하시면 된다고. 결과는 그가 설계한 그대로다. 왕자에서 궁내 대신으로, 궁내 대신에서 사법 대신으로, 사법 대신에서 검사 총장으로 명령이 흘러내려가고, 전단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된다.
소설은 이 장면을 혼다의 '센스'로, 이사오의 죄에서 불길한 그림자 하나를 걷어낸 유능한 처리로 그린다. 그러나 이것은 변론이 아니라 범죄다.
변호인이 의뢰인인 (수사단계의) 피의자 또는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을 위해 증거를 없애도 되는 걸까? 한국 형법 제155조 제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한 자를 처벌한다. 핵심은 '타인의'라는 세 글자다. 피고인이 자기 사건의 증거를 없애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자기를 방어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고 형사처벌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인정하면서 제3자인 국가권력의 적법한 수사를 통한 증거수집을 통해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피고인 본인의 증거인멸은 이 죄의 대상에서 빠진다. 그러나 혼다는 피고인 본인이 아니다. 그는 변호인이고, 이사오의 사건은 혼다에게 어디까지나 '타인의' 형사사건이다. 따라서 혼다가 전단지를 사라지게 한 행위는 방어권이라는 우산 아래로 들어오지 못한다. 자기 증거 인멸은 불벌이지만, 타인의 증거를 그 이익을 위해 없애면 그대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한다.
게다가 혼다는 자기 손으로 전단지를 없애지 않았다. 그는 왕자를 움직였고, 왕자는 궁내 대신을, 궁내 대신은 사법 대신을, 사법 대신은 검사 총장을 움직였다. 직접 인멸이 아니라 교사다. 그것도 한 다리가 아니라 여러 다리를 건넌 연쇄교사다. 혼다는 왕자에게 인멸을 교사했고, 그 교사는 다시 아래로 전달되어 마지막 손이 증거를 없앴다. 형법은 교사범을 정범과 같은 형으로 처벌하므로(제31조 제1항), 직접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이 혼다를 면책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변호인의 정당한 조력으로 볼 수는 없을까. 변호인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성실히 변호할 의무가 있다(성실의무). 그러나 그 의무는 적법한 수단 안에서의 조력을 뜻하지, 증거를 없애고 진실을 조작하는 데까지 미치지 않는다. 변호인에게는 동시에 진실의무가 있고, 적어도 적극적으로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판례도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위조하는 데 이르면 더 이상 정당한 방어가 아니라고 본다(대법원 1965. 12. 10. 선고 65도826 전원합의체 판결). 하물며 피고인 본인이 아니라 변호인이, 타인의 사건 증거를, 권력의 연쇄를 동원해 인멸한 경우라면 조력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다. 요컨대 소설에서 혼다의 가장 빛나는 한 수로 그려지는 증거인멸교사는 변호사로서는 실격을 당할 수 있는 범죄다.
IV. 법정 안에서의 변론 — 세 개의 신문으로 흔드는 단 하나의 구성요건
법정 안으로 들어오면 혼다의 변론은 한층 정밀해진다. 그리고 세 번의 신문이 모두 하나의 표적을 겨눈다. 검사가 내세우는 객관적 사실들 검을 팔아 단검을 산 것, 단검을 입수한 것, 동지들이 모인 것 자체는 굳이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행위에 붙은 '고의'만을 흔드는 것이다. 살인예비죄가 성립하려면 살인의 목적과 준비의 고의라는 주관적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혼다는 객관적 행위는 내어주고 주관적 요건인 고의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단검 —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첫 번째는 단검이다. 재판장은 일본도를 팔아 단검을 산 행위를 살인예비의 간접 증거로 중시했다. 혼다는 이 추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단검을 산 데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음을, 곧 자결을 위한 것이기도 했음을 끌어낸다. 신풍련 지사들이 싸움에는 보통 검을, 자결에는 단검을 썼다는 사실, 이사오가 그들의 자결을 흠모했다는 사실을 엮어, 단검 입수가 '타살을 위한 것'으로만 단정될 수 없게 만든다. 마침내 이사오에게서 "타살과 자결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는 답을 끌어낸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혼다가 단검이 자결용이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하고(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제275조의2, 헌법 제27조 제4항). 대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주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대법원 2003. 2. 11. 선고 2002도6110 판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다.
그러니 혼다의 작업은 자결용이라는 반대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단검이 살인용이라는 검사의 추론에 "자결용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 하나를 심어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검사가 '살인 목적'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해내지 못하는 한, 그 빈틈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입증의 부담을 지지 않은 채 상대의 입증만 무너뜨리는 것, 이것이 형사변호의 정석이고, 혼다는 그것을 정확히 한다.
검사도 가만있지 않는다. "지나친 유도 신문"이라며 항의한다. 유도신문 자기가 원하는 답을 질문 속에 미리 넣어두는 신문은 신문자에게 우호적인 증인을 상대로 한 주신문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2항), 상대방 증인을 깨는 반대신문에서는 오히려 허용된다(제76조). 혼다의 신문이 검사 측 입증을 무너뜨리는 반대신문의 성격이라면 유도신문은 허용되는 무기이고, 검사의 항의는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혼다가 자기 의뢰인인 이사오를 우호적으로 이끌어 원하는 답을 끌어낸 대목이라면, 그것은 주신문에 가까워 항의에 일리가 있다. 더구나 "두 목적이 있었다"는, 아직 다투어지는 사실을 이미 정해진 것처럼 전제하고 몰아가는 신문은 증인을 착오에 빠뜨리는 오도신문에 가깝다고 볼 여지도 있다.
기타자키 노인 — 증명력 감쇄
두 번째 신문의 주인공은 검사 측 증인이다. 검사는 호리 중위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그의 하숙집 주인이었던 기타자키 노인을 부른다. 그런데 일흔여덟의 이 노인은 증언대에서 무너진다. 처음에는 호리 중위의 손님들에 관해 그럴듯하게 진술하는 듯하더니, 이사오의 얼굴을 두고 "이십 년 전에 여자와 함께 별채에 온 젊은이"라고 우긴다. 이십 년 전이라면 이사오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방청석은 노인의 노망을 비웃는다.
이 장면은 증언할 자격이 있는가(증인적격)와 그 증언이 사실 인정에 쓸 만한 힘이 있는가(증명력)는 별개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타자키 노인은 증인이 될 자격 자체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적법하게 소환되어 선서하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시간을 뒤섞어버렸고, 그 증언의 증명력은 사실상 0으로 떨어진다. 검사가 호리 중위라는 배후를 입증하려고 부른 증인이, 도리어 검사 측 입증의 신뢰를 갉아먹은 것이다. 혼다는 이 증인에게 따로 반대신문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특별히 없습니다." 그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무너지는 증인 앞에서 침묵하는 것 역시 하나의 변론이다.
마키코의 일기 — 번의(飜意)든 아니든
세 번째는 마키코다. 혼다는 기토 마키코를 증인으로 세우고, 그녀가 결행 며칠 전에 쓴 일기를 증거로 낸다. 일기에는 이사오가 결행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정황이 적혀 있다.[3] 결행을 단념한 마음, 곧 범의의 동요를 입증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일기라는 증거의 성격이 문제 된다. 일기는 마키코가 법정 밖에서 적어둔 진술을 담은 서면, 곧 전문증거다.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제한되지만, 한국 형사소송법은 예외를 둔다. 피고인 아닌 사람이 작성한 진술서는 그 작성자가 공판에서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하면 증거로 쓸 수 있다(제313조 제1항). 마키코는 증인으로 출석해 '내가 썼고 나중에 고친 곳은 한 군데도 없다'며 진정성립을 인정했으므로, 그녀의 일기는 이 조항에 따라 본증으로서 증거능력을 얻는다. 굳이 탄핵증거의 지위를 빌리지 않아도 정식 증거로 법정에 들어오는 것이다. (만일 진정성립이 인정되지 않았더라도, 검사 측 주장의 증명력을 깎는 용도라면 전문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탄핵증거로는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 어느 쪽이든 혼다가 노린 효과로 이사오의 범의가 흔들렸다는 정황을 법정에 들이는 것은 달성된다.
물론 법정에는 곧 모순이 끼어든다. 정작 이사오 자신이, 마키코에게 한 포기 선언은 그녀를 사건에서 떼어놓기 위한 거짓이었다고 진술해버리기 때문이다. 마키코의 일기는 '포기했다'를 말하고, 이사오의 입은 '그 포기는 거짓이었다'를 말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텍스트는 끝내 확정하지 않는다. (이 진실의 미결성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의 가장 깊은 주제이지만, 그것은 법정 바깥의 이야기이므로 추후 소설에 대한 리뷰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변론 기술의 차원에서만 보면, 혼다의 노림수는 명료하다. 그는 판사의 심증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 대비할 수 있도록,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자료를 동시에 법정에 깔아둔 것이다. 판사가 범의의 동요를 중시하는 쪽이라면 마키코의 증언과 일기가 효력을 발휘한다. 이사오에게 애초에 확고한 살인의 목적이 없었거나 적어도 그것이 흔들렸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판사가 사상과 신념을 중시하는 쪽이라면 이사오 자신의 진술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가 끝까지 품은 일관되고 순수한 우국의 뜻이 정상참작의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피고인에게 유리한 심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입증책임은 어디까지나 검사에게 있으므로, 혼다는 이 두 주장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스스로 확정할 필요조차 없다.
V. 판결의 이중성 — 유죄이나 형 면제?
판결은 '살인예비죄는 인정하되 형은 면제한다'고 내려진다.
이 결론은 언뜻 모순처럼 보인다. 일본 형법 제201조는 살인예비를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벌하면서, 단서로 "정상에 의하여 그 형을 면제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죄의 성립은 인정하면서(포섭), 동기와 정상을 보아 형은 면제할 수 있는(방면) 길을 한 문장 안에 함께 열어둔 것이다. 이사오의 '순수'가 법정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미시마의 미문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단서 한 줄 때문이다. 동기의 도덕성을 형의 존부에 연결하는 이 조문이 없었다면, 혼다의 모든 변론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는 애초에 이 사건을 살인예비보다 훨씬 무거운 내란예비로 키우고 싶어 했다.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한국법의 잣대를 잠시 빌려보면 흥미롭다. 내란죄의 준비 단계는 음모와 예비로 나뉜다. 음모는 두 사람 이상이 범죄 실행을 합의하는 단계이고, 예비는 그 합의가 물적 준비행위로 나아간 단계다(음모가 예비에 선행한다고 본다, 대법원 1986. 6. 24. 선고 86도437 판결 취지). 그리고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단순한 토론이나 추상적 공감을 넘어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가겠다는 확정적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하고, 그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4도10978 전원합의체 판결). 이사오 일당의 거사는 재계 거물 암살을 꾀했으나 준비 단계에서 무산되었고, 황족 내각이라는 구상도 거짓 전단지 수준이며 그마저도 '어른의 사정'으로 증거로 제출되지도 못했다. 확정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을 갖춘 내란의 합의로 보기에는 그 실체가 너무 빈약했던 것이다. 검사가 내란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살인예비에 머문 것은, 한국 판례의 기준으로 보아도 수긍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쟁점을 짚어두자. 만약 이 재판이 오늘의 한국 법정에서 열렸다면, 혼다의 변론은 같은 결말에 이를 수 있었을까. 어렵다. 한국 형법 제255조는 살인예비·음모를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벌할 뿐, 일본 형법 제201조 단서와 같은 '형 면제'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죄가 인정되면 형의 면제로 빠져나갈 출구가 조문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길은 결행을 단념했다는 사정, 곧 '예비의 중지'를 끌어오는 것인데, 대법원은 실행에 착수하기 전 단계인 예비음모의 행위에는 중지미수의 형 감면 규정을 준용할 수 없다고 본다(대법원 1991. 6. 25. 선고 91도436 판결). 학설은 형의 균형을 들어 이를 비판하지만, 판례는 일관되게 부정한다. 요컨대 혼다가 일본 법정에서 이끌어낸 '유죄, 그러나 형 면제'라는 결말은, 한국 법정에서라면 도달하기 어렵다. 그의 화려한 변론은, 한국에서라면 절반만 성공했을 것이다.
VI. 결론 — 법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가장 깊이 어겼다
여기까지 살펴본 혼다의 변론을 늘어놓아 보면, 눈을 가리고 있는 정의의 여신을 모독하는 법기술의 총집합이다. 권력을 위협해 증거를 인멸하고(III장, 명백한 위법), 객관적 행위는 내준 채 주관적 목적만 흔들고(IV장, 법 기술), 동기를 보아 형을 면제하는 방향으로 의뢰인을 밀어 넣는다(V장, 죄형법정주의). 거의 전부가 위법하거나, 적어도 변호사로서 윤리의 경계를 밟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서툰 변호사의 실수가 아니라, 평생 유능하고 이성적인 법률가로서(혼다는 그냥 전직 판사도 아니다. 혼다의 아버지는 대심원 판사였다. 작중에 '전관예우'를 의심케 하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둘 수 있는 가장 치밀한 수만 두었다. 기술(art)로서 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변론 기술로써 법의 정신을 뒤엎는 판결을 만들어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혼다는 인간 이성과 실정법의 질서를 자기 존재의 핵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 핵에는 근대법의 대전제, 곧 법과 도덕의 분리가 놓여 있다. 동기가 아무리 순수해도 행위가 법을 어기면 벌하고, 동기가 아무리 추악해도 법에 닿지 않으면 벌하지 않는다는 중립성이다. 이사오는 이 중립성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인물이다.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어째서 허용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사오가 그렇게 말했던 아름다운 행위는 내란을 성공시키고 무사답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긴 했지만….) 혼다는 "법을 초월한 법적인 진리"에 마음이 동했다. 다만 이사오가 폭력으로 법을 부수려 했다면, 혼다는 실정법을 섬기던 수도승이 더 높은 진리를 위해 배교자가 되듯 법을 안에서 무력화한다. 두 사람은 정반대 자리에서 출발해, 법을 무력화시키는 같은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혼다의 변론에는 끝내 풀리지 않는 매듭이 하나 있다. 정작 이사오 자신은 구원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사오가 바란 것은 명예로운 단죄였고, 결국에는 죽음이었다. 신풍련 지사들처럼 뜻을 위해 죽는 것, 그것이 그가 품은 삶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혼다는 의뢰인의 그 명백한 의사를 거슬러 석방을 향한 변론을 밀어붙인다. 의뢰인의 뜻을 따르는 것과 의뢰인에게 객관적으로 이로운 것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 변호인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혼다는 후자를 택했고, 그 순간 그는 이사오를 한 사람의 의뢰인이 아니라 자신이 구해야만 하는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법적 관계 이전에, 사적인 구원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사오를 '살리는' 변론은, 끝까지 결행하고 죽고자 했던 이사오를 '결행을 단념한 미숙한 청년'으로 바꾸어 놓는다. 법이 그를 구하는 방식이, 그를 그답지 않게 만든다.
그러니 마지막 물음은 이렇게 남는다. 혼다는 정말 이사오를 구한 것인가, 아니면 이사오를 지운 것인가. 이 물음은 법률가의 법 지식으로 대답될 수 없다. 그것은 미시마가 이 소설 전체를 통해 던지는 법/정치철학적 질문에 가깝다. 미시마 유키오가 들려주는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석방 후 소설의 결말이 나기 전까지 잠깐 넋을 놓고 혼다와 이사오 둘 다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미시마 역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치면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소설가가 된 인물이라 그가 <풍요의 바다> 4부작 곳곳에 둔 법철학적 메시지에는 쉽게 응답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는 다음으로 미룬다.
[1] '규문주의적 검찰관 사법(糺問主義的検察官司法)'은 다이쇼 형소법 이후의 일본 형사절차가 검찰관 주도로 재편된 구조를 가리켜 평가하는 표현이다. 오다나카 도시키(小田中聰樹) 『刑事訴訟法の歴史的分析』(日本評論社, 1976) 참조.
[2] 예심제도가 모든 나라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는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라는 형태로 비슷한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중죄 사건에서는 수사가 의무적이다. 반면 독일은 1974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했다.
[3] 마키코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사오는 결행을 '포기'한 셈인데, 한국법에서 이는 '예비의 중지'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뒤(V장)에서 보듯 한국 대법원 판례는 예비의 중지에 형 감면을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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