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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기능주의적 극단의 통치가 선사하는 대안 없는 로맨스

양자역학이 좋아 2024. 6. 23. 22:09

 

  올 초에 영화광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또 다른 친구에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다른 영화를 추천 받아서 봤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기괴한 설정으로 일상적인 소재임에도 쉽사리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든 상상력과 그에 따른 전개만큼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서사 속에서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계관 설정이 주는 기괴함에 묻혀 서사가 주는 재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이조차 감독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예상범위 내에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이 주는 역겨움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도시적 정경과 자연의 풍광들만으로도 시간을 내서 보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배경은 관계에 있어 극단적인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심지어 반군 역시 동일하게 묘사한다. 커플만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솔로는 외딴 호텔로 잡혀와 짝짓기에 성공해야 한다. 제한된 체류기간 내에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동물로 바뀌는 벌을 받게 된다. 체류기간을 늘리기 위해 솔로들은 호텔에서 도망간 숲 속의 외톨이들을 사냥할 수도 있는데, 이 외톨이들은 호텔과 반대로 어떤 연인관계도 허용하지 않으며 철저히 개인적 생활양식만을 강요 받는다.

  이 사회의 사람들은 공통점을 보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영화적 설정은 인물 묘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수상하리만큼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대화와 정서는 건조하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유일무이한 기준인 공통점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강조하며 다가간다. 호텔에서 주인공을 비롯해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공통점을 거짓으로 꾸며내기까지 하는데, 이 거짓말이 발각되는 순간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관계도 깨어진다.

 

  관계도 또 그에 대한 저항도 철저히 기능주의에만 충실할 뿐, ‘여백없이 퍽퍽한 영화 속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주인공이 호텔에서 도망나와서 숲속에서 외톨이 무리에 들어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면서부터다. 승전 축하 파티도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이어폰을 꼽고 각자 춤을 추는 등 개인주의적 생활양식만을 강요하는 외톨이들 무리 속에서는 도저히 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근시라는 공통점에서 연인으로 관계가 발전한다.

 

  01의 과장된 반응밖에 없는 장면들 속에서, 타인들에게 표상되는 관계 너머 진실된 감정이 유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근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주인공과 그의 연인이 함께하는 장면들이다. 시종일관 표정 없이 딱딱한 것과 달리 그들은 대화하기 위해 수신호를 개발하고, 그 수신호는불필요하게도 수십여개로 늘어난다. 외톨이들 무리의 지도자의 부모님 댁에 함께 가서 연주를 들을 때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질 정도로, 감정 표현의 자유가 느껴진다.

  주인공과 그 연인은 도시로 다시 도망갈 계획을 세우나 그들의 계획은 곧 발각되고, 주인공의 연인은 실명 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근시라는 공통점으로 통했던 이들은 필사적으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찾아내는데 실패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도시로 도망을 실행하고 주인공은 레스토랑에서 나이프를 빌려 스스로 눈을 찌르기 위해 화장실에 가고 연인은 그를 기다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서사 그 자체가 주는 재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각 장면을 설정 전체와의 연관성 하에서 해석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인상은 없었다. 영화해석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와 권위주의적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적 문화정치의 특징은 통치의 시각에서 기능주의적 극단만을 강조할 뿐, 개인의 자유나 민주주의는 소거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에서도 커플의 장점을 교육하는 장면은 권위주의적 통치가 보여주는 천박함만 남은 우스꽝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기능주의적 극단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에서 탈출구는 어디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과연 주인공이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을까? 제도권의 억압은 그를 거짓된 관계로 몰아 넣었고, 그에서 벗어나 합류한 저항군 역시 관계를 억압한다. 여기에서 다시 도망하여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눈동자에 칼을 겨누며 고뇌하는 그의 표정은, 마치 이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를 뛰어넘는 광기라고 말하는 듯 하다.

 



더 랍스터
전대미문의 커플 메이킹 호텔! 이곳에선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 모두 유죄! 유예기간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아야만 한다.홀로 남겨진 이들은 45일간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얻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 속에 버려지게 된다.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로 오게 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친다.숲에는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솔로들이 모여 살고 있다.솔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절대규칙은 바로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 것!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레이첼 와이즈)을 만나고 마는데..!
평점
7.3 (2015.10.29 개봉)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두, 벤 위쇼, 존 C. 라일리, 올리비아 콜맨, 제시카 바든, 아리안 라베드, 애슐리 젠슨, 안젤리키 파푸리아, 마이클 스마일리, 로저 애쉬톤 그리피스, 이웬 맥큰토쉬